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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말하고, 너도 그렇게 말하고, 마침내 그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처럼 자주 그렇게 말했으니, 이젠 말들밖에는 남지 않겠구나. [괴테 <색채론 Farbenlehre>]
일반적으로 논쟁을 할 경우, 논쟁 상대방의 지식이 일급일 때 그는 우리에게서 기껏해야 약간의 권위를 느끼거나 아니면 전혀 권위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기껏해야 그는 자신이 거의 혹은 전혀 알지 못하는 학문이나 예술 또는 손일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니는 권위정도만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일반 사람들은 어떤 방면의 전문가에겐 깊은 존경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 자체를 사랑하지 않으며 생계수단으로서 직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더불어, 자신의 직업의 전문적인 지식에 대하여 그들이 철두철미하게 아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다. 만약에 우리가 논제와 관련하여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권위를 갖고있지 않다면, 적어도 엇비슷한 권위라도 있는 척 하고, 상대방이 다른 뜻으로 또는 다른 연관관계에서 말한 것을 논쟁의 화제로 올려라. 상대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권위는 대개의 경우 가장 효과가 좋다. 학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된 미사여구에 대해 나름대로 존경심을 갖고있다. 우리는 필요할 경우 이러한 정보를 날조하거나 바꿀 수도 있다. 아니면 심지어 머릿속에서 바로 지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어떠한 견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여주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이 아무리 부조리한 견해일지라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것을 쉽게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든 범례는 그들의 사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도 작용한다. 그들은 그곳이 어디든 선도양 (先導羊, Leitham-mel) 의 뒤를 쫓아가는 양떼이다.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고 완전히 사례에 의거하여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음에도 한 의견의 보편성이 그들에게 그토록 묵직한 무게를 지닌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자기 지식 Selbstkenntnis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으르며 쉽게 믿는 신봉자들의 숫자는 그렇게 나날이 불어만 간다. 그 견해에 대해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것을 보고 그 다음 사람들은 그 의견이 설득력있는 근거를 가졌기에 그 같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그 견해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견해에 반항하는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나 모든 세상 사람들보다 똑똑해지고 싶어하는 호기심많은 애송이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보편적인 의견에 대한 동조는 하나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그렇기때문에 판단할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다. 이제 여기서 말을 꺼내는 사람은 자기고유의 판단을 내놓을 능력이 전혀 없고 단순히 남의 의견을 메아리치는 역할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만큼 더 열성적이고 더 편협하게 그 의견의 방어자 노릇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신봉하는 다른 주장 뿐만 아니라 직접 판단을 내리려 하는 그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나름대로의 의견은 모두들 갖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자기 고유의 견해를 만드는 대신에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완벽하게 만들어진 의견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이 글은 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에서 추출해온 단락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명깊으면서도 가슴으로 와닿았던 단락이다. 마치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일부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이 사고를 하고있다고 굳게 믿으며 남이 한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일에 열성을 바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나만의 사고를 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남들이 서술한 의견을 읽고 그 중 합리적이어 보이는 의견을 선택하여 나의 의견처럼 둔갑시키는 일일 뿐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군중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역할은 비슷한 모양이다. 지금으로부터 2세기 전의 사람이 저술한 책에도 이렇게 현재와 비슷한 묘사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거운 비중을 가지고 논해야 할 문제이다.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 너무나도 쉽지만, 자신의 의견을 구축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지식인을 이용하고, 주관적인 의견마저 지식인에 문러보는 것이겠지. 원터치에 원하는 의견이 튀어나오니까. 그러나 자신의 의견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찬반좌우 모든 의견을 살펴보고, 비록 미흡하기 짝이 없는 판단력으로나마 자신만의 입장을 구축하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의지를 지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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